#은사자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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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아홉번째파도 #작가의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소설을 끝낸 지금도 여러 번 생각합니다. 진심을 다해 인물들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들의 고통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저는 인물들에게서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습니다. 다만 척주의 골목골목에 바람과 햇빛을 좀더 부려놓지 못한 것이, 제 인물들을 따뜻한 길목에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한 것이 계속 미안합니다.
#은사자_book

#이병률 #이별의원심력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당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거짓이
세상을 덮어버릴까 두려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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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파먹다가 안쓰럽게 부스러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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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에서
당신도 압축된 거짓을 사용했습니다
서로 오래 물들어 있었던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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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 잡았던 손도 결국은 내가 내 손을 잡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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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날 수 없는 것.
그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인생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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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려다 길을 잃습니다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냄새를 따라 내려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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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채는 사그라들고 공기는 줄어들고 나는 마비되었습니다
이별의 원심력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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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사라지기 위해 아이슬란드 폭포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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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일은 어쩔 수 있어도 내부는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슬란드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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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
#은사자_book

#시인목소리
큰길이든 좁은 골목길이든, 익숙한 길이든 처음 가는 낯선 길이든 저는 좋아요. 걷다보면 어느새 길은 사라지고 걷는 상태, 오직 그 순간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나는 걷고 있고 그러므로 살고 있다."라고 시에 쓴적이 있는데, 이같은 기분이 되는게 걷는 일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략) 대체로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걷습니다. 귀에 무언가를 꽂고 걷는 것과 귀를 활짝 열고 걷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걸을때마다 느끼거든요. 코를 열어 숨을 쉬고 냄새를 맡듯 귀를 열어 소리를 듣는 것, 아니 감지하는 것, 그것이 그 공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방식이라는 걸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소리며 빗소리, 강물이 몸을 부딪는 소리에 자연스레 귀를 줍니다. 걷고 있음을 최선으로 체감하기 위해서요.
(박소란 시인 인터뷰 중)
#은사자_book

#사랑보다도더사랑한다는말이있다면 #최갑수
이리저리 여행을 다니노라면, 인생이란 게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짧으니까, 그래서 미워하고 시기하며 살기엔, 한곳에 머물러 살기엔, 아까운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저마다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지만 사실은 밥 먹고 설거지하고 영화 보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살아왔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그레 대부분이다. 팔 할은 이런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쩌면 우리 삶의 실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하도록 하자.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떠나자. 혁명은 멀고 사랑은 간절하니까.
#은사자_book

#심보선 #돌과어울리는사람
돌과 함께라면 그는 침착하다
결단코 절규하지 않는 사제처럼
돌 옆에서 무척 고결하다
친구들이 파티에 오고 술병을 따고
각자의 행방을 묻지 않고
실은 다들 사막에서 돌아왔는데
열흘 전부터 모래를 털며 오늘을 준비했는데
그는 돌과 함꼐 왔다 여느 때처럼
돌에게 훈제 고기를 먹여주며
너는 매 순간 아름다워지는구나 중얼거린다
그는 석학(石學)을 독학했고
오늘도 친구들에게 강론한다
거울에 돌을 던지면
거울도 돌도 아닌 바로 네 얼굴이 깨진단다
돌은 밤에 남몰래 수백 페이지로 펼쳐진단다
돌이 마침내 조각조각 부서지면 후생에는
각기 다른 품계의 천사들로 태어난단다
그는 돌과 함께 떠난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도 사막으로 다시 떠나고
그는 집으로 돌아와소파에 앉은 돌이
인간이 모르는 표정으로 잠들고
인간이 모르는 소리로 이를 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는 돌 때문에 돌아버렸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돌과 어울리는 사람이다
돌도 인간도 모두 잠든 밤
그는 창밖에 듧은 사막을 바라본다
무수한 모래알들이 바야흐로 한데 뭉쳐
장대하고 아름다운 바위가 되는 것을 상상할 때
그는 고결한 사제처럼
돌 하나의 지극한 침묵 속으로
서서히 빠져드는 것이다
#은사자_book

#신용목 #눈사람
미래? 정말로 그런 게 있다면 살고 싶지 않을 거야.
왜? 늙기만 할 거니까, 죽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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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마음을 가져가는 것으로 찾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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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너무 커,
어둠을 끄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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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만큼 무수한 스위치가 필요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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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는 말 속에 늘 혼자 있는 사람과 혼자라는 말을 들고 늘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를 일으켰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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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에 박혀 있던 돌맹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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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울었다. ⠀⠀⠀⠀⠀
#은사자_book

#정기린 #당신이라서가능한날들이었다
나는, 슬픈 사람이에요. 이마저도 사는 동안 그 '슬픔'이 나를 도통 내버려두지 않았던 때문이겠고요.
그리하여 세상 모든 슬픔들을 혼자서 이고 지려 들었던 스스로의 미련스러움을 원망한 적도 많았건만, 뒤늦게 깨닫는 것은 그 슬픔에게 나는 제법 많은 빚을 지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몫의 고통을 먼저 충실히 앓아내지 않았더라면 다른 이들이 동일한 무게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가련한 길동무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살아 있음의 진창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내고 밝혀내는 지혜를 꺠우치지 못했더라면 그렇게 피어난 꽃이 다름 아닌 당신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와 같은 슬픔들 아니었더라면 감당하기 힘든 파도가 닥쳐올때 그것들이 나의 헛된 욕심과 자만을 휩쓸어 지나가도록 온몸으로 맞아낼 결단은 영영 내리지 못했을 것이며, 당신에게 삶의 가없는 고통처럼 마르지 않는 생명의 숨결과 영감의 원천이 되겠노라 약속할 수는 더더욱 없을 테니까요. 그대여, 이것은 결코 허언도 장담도 아닙니다. 살아온 날들의 어둠과 살아갈 날들의빛으로 빚어내는, 단 하나의 다짐입니다.
어쩌면 '사랑'이란 '끝내 사랑하겠노라는 각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이라는 말이 '어떠한 상황에서도'라는 전제를 기반하지 않는다면 결국 온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은사자_book

#신현림 #당신없이잘사는법
당신을 생각하면 바다가 생각나요
젤리 물결이 되어 부드럽고 끈끈하게
저를 묶어 갔죠 절대로 헤어지는 일이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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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든 게 갖고 싶었어요 눈도 입술도
입속의 혀도 몸을 칭칭 감은 노끈 같은 다리와
먼 수평선이 지워질 포옹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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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옷을 벗을 때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커튼 새로 스미는 햇살 비단에 감싸인 누드
알몸이 보일 때까지 바라보는 게 좋았죠
옷 벗을 때의 공기,그 흐름을 느끼고
슬프고 힘든 일은 잊었더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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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떠나간 후
멀어져 가는 버스나 기차를 봐도
아프지 않으려고 많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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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 없이 잘 사는 법을 터득하며
남녀의 국경선을 뛰어넘어
고단한 이들에게 노을 같은 꽃을 건네며 잘 지낼게요
다시 힘내자고, 다시 사랑하자고
붉고 뜨거운 소나기 박수
#은사자_book

#선생님요즘은어떠하십니까 #이오덕 #권정생
행복이라는 환상을 떨쳐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 잘 산다는 인간들, 선진국, 경제대국 이런 것 모두 야만족의 집단이지 어디 사람다운 사람 있습니까. 어쨌든 저는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눈물투성이입니다. 인간은 한 순간도 죄짓지 않고는 목숨이 유지되지 않는데,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한 번 웃었을 때, 내 주위의 수 많은 목숨이 희생당하고 있었고, 내가 한 번 만족했을 때, 주위의 수 많은 목숨이 희생당하고 있었고, 내가 한 번 만족했을 때 주위의 사물이 뒤틀려 버리고 말았던 것을 어떻게 지나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수만 번 되뇌어도 역시 인간은 죄 뭉치에 불과합니다. 이런 죄 덩어리를 어디다 사죄받을 곳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 용서받는다는 것도 죄입니다. 결국 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울 수도 없다면 죽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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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나 #2인용독백#주운기억
기억을 버렸어.
어디서?
산책을 하다,길에서.
어떻게?
떨어뜨려 버렸어.
왜?
주웠으니까. 주운 기억이었으니까.
먼 훗날 다시 한번 주울 거지?
응. 아마도.
기억도 할 수 없는 오래전의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불쑥 다가올 때.
응. 길을 걷다 불쑥.
그 일을 이해해야 하니까.
아냐. 꼭 그런것은 아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마 결코 그 일을 이해하진 못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단 하나의 불가사의로 눈부시게 빛날 거야.
그럼 왜 줍지?
기억 속 찬란한 순간을 위해. 믿기 어렵지만, 다시 한번 그 순간을 살기 위해.
섬광처럼 짧은 그 찬란한 순간 주위를, 암흑 같은 고통의 순간이 토성의 고리처럼 빙빙 돌고 있어도?
응.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기억이 말해도.
너의 기억이?
아니, 주운 기억이.
#은사자_book

#신철규 #눈물의중력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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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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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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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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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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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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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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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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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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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자_book

#운다고달라지는일은아무것도없겠지만 #박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사자_book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여름#어디로가고싶으신가요
남편을 잃기 전, 나는 내가 집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몰랐다. 같이 사는 사람의 기척과 섞여 의식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뜬 뒤 내가 끄는 발 소리, 내가 쓰는 물 소리. 내가 닫는 문 소리가 크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 떠다녔다.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제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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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술래는슬픔을포기하면안된다
탈탈 털어 죄다 갖다 버린 그늘에는
무릎에서 떨어진 딱지도 있고
취한 아버지가 내 이름을 오래 부르다 고꾸라져 잠든 밤도 있고
뒤틀린 다리를 끌고 사라지던 여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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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뚝한 연필, 가느다란 연필, 부러진 연필로
새벽의 어깨선을 열심히 그리던 시간들도 모두
모두 갖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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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더니 살겠다
내가 나를 연기하며
(시도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연기를 하며)
그늘을 기억하는 일과
들어가 사는 일 사이에서 도르래를 굴리며
살 수는 있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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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태어난 슬픔은 악다구니를 피해
여전히 질투 나게 말랑한 누군가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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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끈덕지게 새끼를 치고
나는 멀리에서 가벼워진 몸,
이라 생각하며
포기, 포기, 포기하겠다고 눈을 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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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벽 방바닥에 앉아 발가락을 만져보니
열개의 잘린 술래들,
벙어리가 되어 입을 벙긋거리는 술래들이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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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봤자 소용없어,
아름다운 그늘!
#은사자_book

#민경희 ( @page_737 ) #별일아닌것들로별일이됐던어느밤
이미 지나온 일들은 말하면 말할수록 털어지기보다는 아쉬움이 커진다. 그 아쉬움을 안고 어떻게든 한 걸음 더 떼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어리숙한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고 얻은 결론이다.
살아가기 위해 잊는 것들이 있다.
힘들었던 기억들, 어떤 상황에서 나를 변호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들었던 날카로운 말들, 내가 했던 선택 뒤에 남은 아쉬운 결과들.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면 지워지기도 하더라. 그러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며 잊었던 과거가 문득 생각나면 하루종일 성가시다.
#은사자_book

#2017제8회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그여름 #최은영
이경은 수이가 최소한으로 상처받기를 바랐다. 그래서 수이에게 은지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고, 그것이 수이를 위한 일이라고 철저히 믿었다. 수이를 속이기를 마음 먹은 순간 이경은 자기 자신조차 완벽하게 속일 수 있었다. 이경은 자신의 기만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 거짓말이 비겁함이 아니라 세심하고 사려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려라니. 지그의 이경은 생각한다. 배려라니. 그 거짓말은 수이를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고 위선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떄의 이경은 몰랐다. 수이는 그런 식의 싸구려 거짓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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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다크 #무라카미하루키 #アフターダーク #어둠의저편 #村上春樹
그래서 생각하는 건데,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광고지가 됐든,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이라든지 ‘가슴 끝내주네’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 게 아니야. 불 입장에선 전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랑 같은 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그래서 말이지, 만약 그런 연료가 나한테 없었다면, 기억의 서랍 같은 게 내 안에 없었다면, 난 이미 오래전에 반 동강 났을 거야. 어디 궁상맞은 곳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길바닥에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 소중한 거, 시시한 거, 이런저런 기억을 그때그때 서랍에서 꺼낼 수 있으니까 이런 악몽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도 그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이젠 틀렸다, 더는 못 해먹겠다 싶어도 그럭저럭 고비를 넘길 수 있어.
#은사자_book

#수신확인차별이내게로왔다 #평범하지않지만평범한소수자들의이야기 #인권운동사랑방
나 아닌 누군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너희들이 있어야 할 곳을 정해줄게'라며 눈에 띄지 않는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장소로 몰아넣고 선을 그어버릴 때 그 누군가는 이중생활을 한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맘 편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 고단함을 그들끼리만 감내하게 만든다. 비정규직 노동자, 성 판매/성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이나 누구든지 특별한 정체성으로만 불러내는 것은 선을 긋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몰아넣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 하나의 정체성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은사자_book

#무지개속적색 #해나디 #TheRedInTheRainbow #HannahDee
여러 성과를 거뒀음에도 성소수자가 계속 억압받는 것은 성소수자 억압이 자본주의 사회조직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와 겨쟁으로 움직이는 체제에서는 권력자들이 우리 삶의 모든 측면(심지어 개인적 관계마저)을 이윤 추구라는 우선순위에 종속시키려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가족제도다. 가족은 개인 관계를 규제하는 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며 지배계급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노동력을 싼값에 재생산하기 위한 핵심 메커니즘이다. 정치인, 대기업, 언론은 가족 가치를 찬양하면서 육아부터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일까지 막대한 부담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긴다. 그런데 성소수자는 전통적 가족의 바탕이 되는 관계와 역할을 훼손하고 혼란에 빠뜨려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섹슈얼리티나 성별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 가족의 근간 전체에 의문이 제기될 것이고 체제 유지에 이용되는 편견과 분열이 약화 될 것이다.
따라서 영속적이고 참다운 해방을 이룩하려면,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더 넓은 투쟁과 함께해야 한다.
...
두려움에 떨거나, 법적 박해를 받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고, 원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성 해방을 위해 이런 급진적 투쟁을 재개해야 할 때다. 무지개 속 적색을 다시 발견할 때다.
#은사자_book

#조혜은 #우리
암호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무것도 믿지 않아. 나는 다리가 꺽인 짐승처럼 빙 돌아와 말했다. 아 파 요. 간격을 두고 마디마다. 몸이 찢어진 벌레들 위에 누운 언니는 숨겨진 것들의 작은 아픔을 욕망했고, 핀셋을 들어 관찰했다. 때때로 나는 공포를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나의 내장에 기생하는 벌레들을 상상했다. 우리는 무력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욕망은 너의 아픔보다 중요한 일일까. 너와 나는 우리를 자세히 훼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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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많아요.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고 배경이 되고 단연이 되고. 어두은 커튼으로 내려앉아 불빛으로 새어 나가고. 우리는 날 속에 쳐진 얇은 막이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는 서로를 파괴할 때 더 사랑해요.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얇고 견고하고 위태롭고 많은 단어의 색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나는 파괴될 때 더 아름다웠고, 우리의 사랑은 충분히 병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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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을 쫓아 밤이 되길 기원했다. 그는 한가지 꼭 원하는 것이 있어 삶이 무거웠고, 나는 원하지 않는 것이 있어 삶이 무서웠다. 그는 매일 밤마다 꿈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모든 것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해. 나는 우리가 굶주림에 지쳐 서로를 뜯어 먹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앓았다. 나의 한쪽이 무섭게 병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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